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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영화 '식코(Sicko)' 보험이 있어도 치료받지 못하는 나라

by 진프젝 2025. 4. 19.

영화-식코
다큐영화 식코

여러분은 아픈 사람이 치료받을 권리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니, 조금 다르게 물어볼게요. 사람의 건강이 이윤 창출의 대상이 되는 것은 과연 옳은 일일까요?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식코(Sicko)'는 바로 이 질문을 정면으로 던지는 작품입니다. 2007년 개봉한 이 영화는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인 미국의 의료 시스템이 어떻게 국민들을 외면하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1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보험이 있어도 치료받지 못하는 나라

'식코'는 일반적인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와 조금 다른 접근을 취합니다. 미국에서 의료 보험이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 의료 보험이 있음에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이는 더욱 충격적인 현실을 드러냅니다. 돈을 내고 가입한 보험이 정작 필요할 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이 과연 보험의 역할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니까요.

영화는 다양한 실제 사례를 통해 미국 의료 보험 시스템의 민낯을 보여줍니다. 심장병 수술이 필요했지만 보험회사가 '실험적 시술'이라며 거부해 사망한 환자, 뇌종양 치료를 위한 의사의 권고를 보험회사가 '불필요하다'며 거절한 여성, 딸의 응급 치료를 위해 구급차를 불렀지만 '보험이 승인되지 않은' 병원으로 이송되어 엄청난 청구서를 받게 된 가족 등 실제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청각장애인 부부의 사연은 정말 놀라울 지경이었죠. 귀 이식 수술이 필요했던 이들은 한쪽 귀만 수술받을 수 있다는 보험사의 결정에 절망합니다. "둘 중 어느 귀를 선택하시겠습니까?"라는 비인간적인 질문 앞에서 이들의 눈물은 관객들의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무어는 이런 사례들을 자신의 특유의 풍자적 접근으로 전달합니다. 영화 초반 "미국에는 5천만 명이 의료보험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라고 말하며, 오히려 '운 좋게' 보험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주겠다는 역설적 선언은 강력한 효과를 발휘합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보험회사들이 어떻게 운영되는지에 대한 내부 고발입니다. 전직 보험사 의료 심사관의 증언은 가히 충격적입니다. "우리는 가능한 많은 청구를 거부하도록 훈련받았습니다. 제가 거부한 청구가 많을수록 승진 가능성이 높아졌죠." 이런 시스템 속에서 환자의 건강보다 회사의 이익이 우선시되는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세계의 다른 의료 시스템을 찾아서

'식코'의 두 번째 파트는 미국 바깥으로 눈을 돌립니다. 무어는 캐나다, 영국, 프랑스 등 보편적 의료보장 시스템을 갖춘 국가들을 방문하며 그곳의 의료 현실을 탐색합니다. 이 부분은 많은 미국인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을 것입니다.

캐나다에서 만난 환자들은 응급실에서 20분 안에 진료를 받고, 영국의 국가보건서비스(NHS) 병원에서는 창구에 '지불 창구'가 아닌 '환자에게 돈을 지급하는 창구'가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출산 후 가정부가 정부 지원으로 집안일을 도와주고, 의사가 환자의 집으로 방문 진료를 오기도 합니다. 이런 모습들은 미국인들에게는 마치 다른 세계의 이야기처럼 들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무어는 영국의 한 의사에게 "연봉이 얼마나 되나요?"라고 묻습니다. 그는 고급 주택과 고급 차를 소유하고 있지만, 미국 의사들의 수입에 비하면 훨씬 적은 급여를 받고 있었죠. 그러나 그의 대답은 인상적입니다. "저는 충분히 좋은 생활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제가 환자를 치료할 때마다, 그들이 얼마를 지불할 수 있는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큰 행복입니다."

특히 프랑스의 의료 시스템에 대한 탐구는 많은 시사점을 줍니다. 프랑스인들은 높은 세금을 내지만, 그 대가로 무상 교육, 의료 보장, 충분한 휴가 등 삶의 질을 높이는 다양한 혜택을 받습니다. 무어는 "왜 프랑스인들은 이런 시스템을 위해 거리로 나서 싸우는 반면, 미국인들은 침묵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한국의 의료 시스템과 비교하며

'식코'를 보며 자연스럽게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을 떠올리게 됩니다. 한국은 1989년부터 전 국민 건강보험 제도를 시행하고 있으며, 미국보다는 훨씬 더 보편적인 의료 접근성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OECD 국가 중에서도 의료비 지출이 상대적으로 낮으면서도 높은 의료 서비스 질을 유지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죠.

그러나 한국 의료 시스템도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건강보험이 모든 의료 서비스를 커버하지는 못하며, 여전히 비급여 항목이 많아 환자 부담이 크다는 점은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중증 질환의 경우, 치료비가 가계 경제에 큰 부담이 되기도 합니다.

'식코'에서 보여주는 미국의 영리 추구형 의료 시스템과 비교할 때, 한국의 국민건강보험 시스템은 분명 더 사회 연대적인 접근을 취하고 있습니다. 모든 국민이 소득에 비례해 보험료를 내고, 필요에 따라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기본 원칙은 분명 가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며 우리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의 의료 시스템이 점점 더 시장 원리에 따라 재편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료의 공공성이 위협받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죠. '식코'가 보여주는 미국의 실패는 의료를 완전히 시장에 맡겼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비극적 결과를 경고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한국에서도 "실비보험 있으세요?"라는 질문이 병원에서 흔히 들리게 된 상황은, 우리 의료 시스템의 공공성이 일부 약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의료의 상품화가 진행될수록 보험사의 이윤 추구와 환자의 건강 사이에서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점을 '식코'는 강력하게 상기시킵니다.

쿠바 의료 시스템의 역설

영화의 가장 논쟁적이면서도 감동적인 부분은 쿠바 방문 장면입니다. 무어는 9/11 구조 작업에 참여했다가 건강이 악화된 미국인들을 쿠바로 데려갑니다. 미국 정부가 그들의 의료비를 지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경제적으로 빈곤한 국가인 쿠바가 오히려 이들에게 무상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습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쿠바의 의사들이 외국인에게까지 차별 없이 최선의 치료를 제공하는 모습은, 의료의 본질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듭니다.

물론 이 부분은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쿠바의 의료 시스템을 지나치게 미화했다는 지적이 있었고, 실제로 쿠바 정부의 선전적 측면이 있었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무어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경제적 수준과 의료의 질은 반드시 비례하지 않으며, 의료에 대한 사회적 가치와 접근 방식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나라가 이렇게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왜 못하는가?"라는 무어의 질문은 세계 최대 강국인 미국의 모순을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그리고 이 질문은 한국을 포함한 모든 국가의 시민들에게도 유효합니다. 우리 사회는 어떤 의료 시스템을 원하는지, 그것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결론: 의료는 권리인가, 상품인가

의료는 권리인가, 아니면 구매 가능한 상품인가? 사회는 구성원의 건강을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가? 이런 질문들은 어떤 사회에 살고 싶은지에 대한 더 큰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영화가 개봉된 지 15년이 지났지만, 미국의 의료 시스템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오바마케어로 불리는 건강보험개혁법이 일부 진전을 가져왔지만, 근본적인 문제들은 여전히 남아있죠. 이는 의료 시스템이 단순한 정책의 문제를 넘어, 사회의 근본적인 가치와 관련된 문제임을 보여줍니다.

마이클 무어의 편향성과 선정적인 접근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제기한 질문과 보여준 현실은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때로는 균형 잡힌 접근보다 강력한 메시지가 더 필요한 순간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만약 '의료는 모든 사람의 권리'라는 생각에 공감한다면, 그리고 현재 의료 시스템의 현실에 관심이 있다면, '식코'는 반드시 봐야 할 영화입니다. 때로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는 것이 변화의 시작이 될 수 있으니까요.

"건강은 인간의 기본적 권리이지, 특권이 아니다." - 세계보건기구(WHO) 헌장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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