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개봉한 영화 '유전'은 A24가 선보인 가장 충격적인 작품입니다. 아리 애스터 감독의 데뷔작으로, 전통적인 호러 영화의 문법을 완전히 새롭게 해석하여 많은 국내 팬들도 생겨났죠. 영화는 미니어처 아티스트인 애니(토니 콜렛)와 그녀의 가족이 겪는 기이한 사건들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가족의 의미를 완전히 뒤집어 놓았습니다.
세대를 넘어 흐르는 상처의 그림자
피 속에 흐르는 어둠의 유산
할머니 엘렌의 장례식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겉보기엔 평범해 보이는 가족의 이면을 파고듭니다. 미니어처 작가인 엄마 애니, 정신과 의사인 아빠 스티브, 내성적인 아들 피터, 그리고 독특한 소녀 찰리... 하지만 이 가족에게는 뭔가 불안한 구석이 있었죠.
찰리의 행동은 예사롭지 않았어요. 죽은 새의 머리를 자르고, 이상한 소리를 내며, 할머니와 특별한 유대 관계를 가졌다는 점... 이런 특이한 행동들이 단순한 사춘기의 반항은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모성애의 두 얼굴
애니의 캐릭터는 정말 복잡해요. 미니어처 작가로서 그녀는 자신의 삶을 축소된 모형으로 재현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통제하려 하죠. 이는 실제 가족관계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는데요.
특히 충격적인 건, 그녀가 임신 중이었을 때 피터를 낙태하려 했다는 고백이에요. "난 네가 태어나길 원하지 않았어"라는 그녀의 폭력적인 고백은, 모성이 반드시 자연스럽거나 본능적인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잊을 수 없는 순간들: 핵심 장면 분석
충격적인 가족 만찬 장면
저녁 식사 중에 벌어지는 가족 갈등 장면은 영화의 큰 전환점이 되죠. 애니가 피터를 향해 던지는 분노와 원망은 오랫동안 쌓여온 감정의 폭발이었어요. "난 네가 태어나지 않길 바랐어", "네가 찰리를 죽였어"와 같은 대사들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덮어두었던 상처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찰리의 비극적인 순간
찰리의 사고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충격적인 순간 중 하나예요. 파티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견과류 알레르기로 고통받는 찰리, 그리고 병원을 찾아 과속하는 피터... 그 긴장감 넘치는 순간이 갑작스러운 비극으로 끝나버리죠.
덧붙여 이 장면 후의 연출이 인상적이에요. 카메라는 천천히 피터의 얼굴에서 시작해 그의 방으로,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애니가 차를 발견하는 순간까지... 이 모든 것을 거의 무음으로 보여주면서 관객들의 충격을 배가시키죠.
심령술 모임과 현실의 경계
조안과의 만남으로 시작되는 심령술 모임 장면들은 영화가 초자연적 공포로 전환되는 중요한 지점입니다. 특히 애니가 찰리의 목소리를 내는 순간은 정말 소름 돋는데요. 이는 단순한 공포 연출을 넘어서, 상실한 자식을 향한 모성의 왜곡된 표현을 보여준답니다.
오컬트와 가족 드라마의 만남
파이몬 의식의 깊은 의미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파이몬 의식은 단순한 악마 숭배가 아니었어요. 이는 가부장적 질서의 전복을 상징하는데요. 남성의 몸을 통해 악마가 현신한다는 설정은, 가족 내 권력 구조의 붕괴를 암시하고 있죠. 특히 피터라는 연약한 소년의 몸을 선택한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의식과 가족의 숨겨진 연결고리
엘렌이 속했던 비밀 결사체 '파이몬의 신도들'은 가족이라는 제도 자체를 하나의 의식처럼 다뤄요. 애니가 자신의 미니어처로 가족을 통제하려 했던 것처럼, 결사체 역시 더 큰 차원에서 가족을 조종하고 있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죠. 그들에게 가족은 혈연 집단이 아닌, 악마적 존재를 위한 제물이었어요.
완벽한 공포를 위한 기술적 완성도
독특한 카메라워크
파보 파울릿센의 촬영은 이 영화만의 특별한 분위기를 만들어냈습니다. 특히 미니어처 하우스에서 실제 공간으로 전환되는 장면들이 인상적인데요. 카메라가 천천히 움직이면서 우리가 실제로 인형의 집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킵니다.
실제 촬영 현장에서는 실물 크기의 세트와 미니어처를 오가며 촬영했다고 해요. 이런 기술적 도전이 영화에 독특한 시각적 매력을 더했죠.
사운드의 효과적인 활용
콜린 스테트슨이 만든 음악은 전통적인 호러 영화 음악과는 완전히 달라요. 날카로운 현악기 소리와 불협화음을 적절히 활용하면서도, 때로는 완전한 침묵을 통해 긴장감을 극대화시켰습니다.
찰리의 혀 차는 소리 '툭'은 영화 전반에 걸쳐 불안감을 고조시키는 청각적 모티프가 되었어요. 이 소리는 찰리의 죽음 이후에도 계속해서 등장하면서, 그녀의 존재가 여전히 가족을 따라다니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죠.
현대 호러의 새로운 지평
A24의 혁신적인 시도
'유전'은 A24가 보여준 새로운 호러 영화의 시작점이 되었어요. '위치', '레이디 버드', '문라이트' 등 장르를 넘나드는 A24의 실험적인 시도들 중에서도 '유전'은 특히 큰 반향을 일으켰죠.
이는 공포영화가 오락거리를 넘어서, 깊이 있는 예술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실제로 많은 평론가들은 이 영화를 로즈메리의 아기, 엑소시스트와 같은 고전 호러의 계보를 잇는 작품으로 평가하고 있답니다.
새로운 호러의 탄생
'유전' 이후 등장한 '미드소마', '램', '맨' 등의 작품들은 모두 가족 관계나 사회적 공포를 다루는 새로운 형태의 호러 영화예요. 이들은 모두 '유전'이 보여준 가능성을 각자의 방식으로 확장했죠.
일상적 공간을 낯설게 만드는 방식, 가족이나 공동체가 주는 공포를 다루는 접근법 등은 '유전'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어요.
피로 이어진 운명의 무게
'유전'은 우리에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지는 어둠의 고리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어요. 우리는 부모로부터 무엇을 물려받는 걸까요? 유전자? 트라우마? 아니면 피할 수 없는 운명?
영화는 이런 무거운 질문들을 던지면서도, 독특한 미학과 뛰어난 연출로 잊을 수 없는 공포 체험을 선사해요. 마지막 장면에서 우리는 결국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의 섬뜩한 의미를 온몸으로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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