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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드라마 ott

중경삼림 왕가위가 그린 홍콩의 낭만 고독

by 오티티가이드 2025. 3. 4.

안녕하세요, 오티티 사서입니다. 1994년 개봉한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Chungking Express)'를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2021년도에 리마스터링 개봉해서 보신 분들도 계실거에요. 하지만 나름 오래된 작품이기에 뭐지? 싶으셨던 분들께 왕가위가 그린 홍콩의 낭만, 미드레벨이 어떻게 유명한 관광지가 됐는지 알려드리겠습니다.
영화는 겉보기에는 두 개의 별개 이야기를 담은 옴니버스 영화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도시의 고독, 사랑의 우연성, 그리고 연결을 갈망하는 인간의 보편적 욕망이 아름답게 녹아있습니다.

영화 중경삼림
영화 중경삼림

교차하는 두 이야기

영화는 홍콩 경찰 두 명의 사랑 이야기를 연이어 보여줍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경찰 223(금성무)가 4월 1일, 만우절에 여자친구 메이와 헤어진 후 한 달 동안의 실연 극복기를 그립니다. 그는 5월 1일, 메이의 생일이 되면 모든 것을 잊기로 다짐하며, 유통기한이 5월 1일인 파인애플 통조림을 매일 사 모읍니다. 그러다  바에서 만난 금발 가발의 마약 밀매 여성(임청하)과의 하룻밤 만남은 그에게 새로운 시작의 가능성을 암시합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경찰 663(양조위)과 그의 스튜어디스 여자친구의 이별, 그리고 미드나이트 익스프레스라는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는 페이(왕페이)와의 새로운 만남을 그립니다. 페이는 우연히 663의 아파트 열쇠를 손에 넣게 되고, 그의 집에 몰래 들어가 청소를 하고, 물건들을 바꾸고, 그의 생활에 조용히 개입합니다. 이 독특한 구애 방식은 둘 사이에 묘한 관계를 형성합니다.

시간과 공간의 시적 표현: 독보적인 영상미

'중경삼림'이 특별한 이유 중 하나는 왕가위 감독과 촬영감독 크리스토퍼 도일의 독창적인 영상 언어에 있습니다.
영화는 홍콩이라는 과밀한 도시 공간을 독특한 시각으로 포착합니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사용된 흔들리는 핸드헬드 카메라와 스텝 프린팅 기법은 임청하가 중경맨션을 통과하는 장면에서 특히 두드러집니다. 이 기법은 이미지를 약간 늘리고 흐릿하게 만들어 캐릭터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와 도시의 혼란스러운 에너지를 시각적으로 표현합니다. 임청하가 빨간 가발을 쓰고 비에 젖은 거리를 달리는 장면은 영화의 아이콘적인 순간으로 남았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보다 안정적인 카메라 워크와 선명한 색감이 사용됩니다. 페이가 663의 아파트에서 춤추는 장면에서 사용된 슬로우 모션은 시간이 멈춘 듯한 사적인 순간을 포착합니다. 양조위의 아파트를 비추는 푸른빛 조명과 미드나이트 익스프레스의 따뜻한 노란 조명의 대비는 캐릭터들의 정서적 상태를 시각화합니다. 왕가위 특유의 클로즈업 숏은 등장인물의 가장 사소한 표정 변화까지 포착하며, 대사 없이도 깊은 감정을 전달합니다. 페이가 663을 몰래 바라보는 장면이나, 223이 임청하를 바라보는 장면에서 이 기법은 효과적으로 사용됩니다.

음악으로 완성되는 감성

'중경삼림'의 또 다른 핵심 요소는 영화의 정서를 완벽하게 보완하는 음악입니다.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California Dreamin'"(The Mamas & the Papas)은 페이 캐릭터의 테마곡이자 영화의 상징적인 사운드트랙이 되었습니다. 페이가 663의 아파트에서 춤추는 장면에서 이 노래는 그녀의 꿈과 욕망, 그리고 홍콩이라는 공간에서 느끼는 이국적 감성을 완벽하게 표현합니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사용된 딘나 워싱턴의 "What a Diff'rence a Day Makes"는 하룻밤의 만남이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암시합니다. 페이와 663이 함께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흐르는 "Dreams"(The Cranberries)는 새로운 시작에 대한 희망을 노래합니다. 음악은 종종 대사를 대체하며, 캐릭터의 내면을 더 직접적으로 관객에게 전달합니다.

홍콩의 정체성과 시대적 맥락

'중경삼림'은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을 앞둔 시기에 제작되었습니다. 이 맥락에서 영화는 홍콩인들의 불안정한 정체성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은유적으로 다룹니다. 중경맨션이라는 다문화 공간과 국제공항으로 떠나는 스튜어디스, 그리고 캘리포니아를 꿈꾸는 페이는 모두 홍콩의 국제적 성격과 이동성을 상징합니다.
금발 가발을 쓴 아시아 여성(임청하)의 이미지는 동서양의 혼종성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며, 유통기한에 집착하는 223의 모습은 시간의 제한에 대한 불안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요소들은 직접적인 정치적 언급 없이도, 당시 홍콩 사회의 집단적 심리를 영화에 녹여냅니다.

연결을 갈망하는 고독한 영혼들

표면적으로는 로맨틱 코미디의 외형을 하고 있지만, '중경삼림'의 핵심 주제는 도시에서의 고독과 연결에 대한 갈망입니다. 모든 캐릭터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고립되어 있습니다. 223은 매일 메이에게 전화를 걸지만 연결되지 않고, 663은 물건들에게 말을 걸며 외로움을 달랩니다. 페이는 언어의 장벽(그녀는 영어와 광동어를 섞어 사용합니다)과 사회적 거리감으로 고립되어 있고, 임청하의 인디언 가발 밑의 금발 가발은 여러 층의 정체성 뒤에 숨은 그녀의 고립을 시각화합니다. 영화는 이런 고독한 영혼들이 우연한 만남을 통해 잠시 연결되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포착합니다. 663이 말하듯 "우리가 지나치는 모든 사람은 우리 삶에서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닙니다.

시적 영화의 걸작

'중경삼림' 영화를 처음 봤을 때의 그 신선함을 아직 잊을 수 없습니다. 왕가위 감독의 독특한 비주얼 스타일, 크리스토퍼 도일의 혁신적인 촬영, 그리고 완벽하게 선택된 음악까지. 그 당시 비디오 가게에서 빌려보던 때였는데 출입이 아주 바빴던 영화였죠. 개봉 당시 홍콩에서는 중간 정도의 성공을 거두었지만, 퀸틴 타란티노의 소개로 서구에 알려지면서 점차 컬트 클래식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오늘날 '중경삼림'은 90년대 홍콩 영화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작품이자, 왕가위의 대표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홍콩의 습한 공기, 패스트푸드점의 냄새, 도시의 소음, 그리고 고독한 밤의 정적까지... 왕가위는 모든 감각을 동원해 관객을 영화 속 세계로 초대합니다. 25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신선하고 매혹적인 것 같네요.
중경삼림 OTT는 넷플릭스, 티빙, 쿠팡플레이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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