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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드라마 ott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저주받은 집 (시즌1) 심리로 보는 미드

by 오티티가이드 2025. 2. 25.

라이언 머피와 브래드 팔척이 창작한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의 첫 시즌 '저주 받은 집'은 인간의 어두운 측면을 잘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유산, 죽음과 같은 트라우마를 경험한 하먼 가족이 로스앤젤레스의 오래된 저택으로 이사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무섭기도 하지만 심리학적으로도 풍부한 분석 소재를 제공해주죠.

아메리칸호러스토리 '저주받은집'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저주받은 집'

트라우마의 반복과 구현

시리즈의 핵심에는 트라우마와 그 반복이라는 주제가 있습니다. 프로이트의 '반복 강박(repetition compulsion)' 개념이 여기서 생생하게 드러나는데, 이는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이 무의식적으로 그 상황을 반복하려는 경향을 말합니다. 벤(딜런 맥더모트)의 불륜과 비비엔(코니 브리튼)의 유산이라는 부부의 트라우마는 이사를 통해 새출발하려는 시도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이 집은 오히려 그들의 트라우마를 증폭시키고 구체화합니다.
벤이 테이트(에반 피터스)와 비슷한 심리적 문제를 가진 환자를 상담하며 과거 패턴을 반복하고, 비비엔이 다시 임신하게 되는 것은 이런 반복의 예시입니다. 아울러 집 자체는 트라우마의 물리적으로 구현을 하게됩니다.
심리학에서 '투사(projection)'라는 방어기제는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외부 대상에 돌리는 것을 말하는데, 시리즈는 이 개념을 확장해 집 전체를 등장인물들의 내면 상태가 투사된 공간으로 표현합니다. 모이라(프란시스 코놀리/알렉산드라 브레켄리지)라는 캐릭터가 벤에게는 젊고 유혹적인 모습으로, 다른 이들에게는 나이 든 하녀로 보이는 설정은 각 인물의 심리 상태와 욕망이 어떻게 현실 인식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는 탁월한 장치입니다.

가족 역동성과 파괴적 패턴

하먼 가족의 역동성은 심리학자 머레이 보웬의 '가족 시스템 이론'을 통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가족은 하나의 정서적 단위로 기능하며 구성원 간의 상호작용 패턴이 심리적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시리즈에서 하먼 가족은 '비밀과 거짓말'이라는 파괴적 패턴에 갇혀 있습니다. 벤의 불륜, 비비엔의 과거 관계, 바이올렛(타이사 파미가)의 자해 행동 등 가족 구성원들은 각자의 비밀을 숨기며 진정한 소통을 피합니다. 이 패턴은 가족 치료사로서 벤의 직업과 아이러니하게 대비됩니다. 바이올렛과 테이트의 관계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병리적 애착(pathological attachment)'의 예시를 보여줍니다. 테이트는 바이올렛에게 위험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에게 강한 정서적 유대를 형성합니다. 그녀의 가정 내 불안정한 애착 패턴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으며, 부모와의 관계에서 경험한 혼란과 불안이 연인 관계에 투영된 결과입니다. 9화에서 바이올렛가 자신이 이미 사망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장면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현실 검증(reality testing)'의 실패와 성공이 동시에 일어나는 강렬한 순간입니다. 그녀는 오랫동안 현실을 부정해왔지만, 결국 자신의 실체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공간이 주는 심리적 효과

저주받은 집의 물리적 공간은 단순한 배경을 넘어 심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환경심리학에서는 물리적 공간이 인간의 심리와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데, 이 시리즈는 그런 영향을 극적으로 표현합니다.
지하실은 중요한 상징성을 갖습니다. 심리학자 융의 관점에서 지하실은 '집단 무의식'이나 억압된 내용물이 저장된 공간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시리즈에서 지하실은 모든 비밀과 죽음의 역사가 축적된 곳으로, 이곳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종종 등장인물들의 억압된 욕망이나 두려움의 표현입니다.
집의 구조적 특성(미로 같은 복도, 끝없이 이어지는 방들, 숨겨진 공간들...)은 인간 심리의 복잡성과 다층성을 시각적으로 표현합니다. 바이올렛가 집에서 빠져나오려 해도 계속해서 같은 장소로 돌아오는 장면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려는 시도가 반복적으로 좌절되는 심리적 경험을 공간적으로 구현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딕 하우스'라는 문학적 전통에서, 집은 종종 거주자의 심리 상태를 반영하는 거울로 기능합니다. 머더 하우스도 이런 전통을 따르면서, 각 방과 공간이 특정 감정이나 기억과 연결됩니다. 예를 들어 비비엔과 벤의 침실은 그들의 깨어진 친밀감을, 바이올렛의 방은 그녀의 고립감을 상징합니다.

죽음과 부정의 심리학

시리즈 전반에 걸쳐 '죽음에 대한 부정'이라는 주제가 강하게 드러납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의 '애도의 5단계' 모델에 따르면, 부정은 상실을 직면했을 때 나타나는 첫 번째 반응입니다. 이 시리즈의 유령들은 대부분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생전의 미완성된 감정적 문제에 묶여 있습니다. 놀란스(네스터 카보넬과 제시카 랭)부부가 죽은 아이 탈리아를 살아 있는 것처럼 대하는 모습, 그리고 바이올렛가 자신의 죽음을 인지하지 못하는 설정은 심리적 부정의 극단적 형태를 보여줍니다. 이는 감당하기 힘든 현실을 마주했을 때 작동하는 심리적 방어기제의 한 예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집에 갇힌 유령들이 생전에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을 계속해서 반복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프로이트가 말한 '애도 작업(work of mourning)'의 실패를 보여줍니다. 성공적인 애도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상실은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심리적 고통을 지속시키게 됩니다.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저주받은 집'은 표면적인 공포 요소 너머에 깊은 심리적 진실을 담고 있습니다. 유령, 살인, 초자연적 현상 등의 공포 요소들은 사실 인간 심리의 어두운 측면—트라우마, 억압, 부정, 그리고 병리적 관계 패턴—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이 시리즈가 많은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얻은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초자연적 설정 속에서도, 시리즈는 근본적으로 매우 인간적인 고통과 갈등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트라우마와의 싸움, 가족 관계의 복잡성, 그리고 상실과 애도의 과정은 모두 우리 자신의 삶과 연결되는 심리적 경험들입니다. 결국 '저주 받은 집'이 보여주는 진짜 공포는 유령이나 살인이 아닌, 해결되지 않은 트라우마가 어떻게 세대를 넘어 반복되고, 우리의 가장 친밀한 관계를 파괴할 수 있는지에 관한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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